<꽃피는 만덕 고물상> / 권현형/ 《현대시학》2005년 9월호
꽃피는 만덕 고물상
살구나무가 시시각각 살구꽃을
맛있는 농담처럼 몸피 밖으로 쬐끔씩
밀어 내보낼 무렵, 꽃 필 무렵
살구나무가 건너다 보고 있는
주문진 시내버스 정류장 앞 만덕 고물상에는
꽃냄새가 고물로 마당 그득 쌓이는 중
사월 초순인데 어린 사내아이는 벌써 풋
살구알이 매달린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
마당의 고물 사이로 우그러진 세발자전거를
몰고 다닌다 그보다 굵은 두 알 세알의 아이들이
시큼텁텁한 살구 냄새를 풍기며 뛰어다닌다
젖이 크고 엉덩이가 둥근 여자가
쓸만한 물건처럼 폐물 어딘가에 숨어 있다
쪽문으로 걸어나와 마당이 출렁이도록
분주하게 제 새끼들을 거둬 모아
숨은 보석처럼 다시 사라질 때까지
살구나무와 젖 큰 여자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낮마다 밤마다 눈마중 해서
낳은 아이들이 꽃 피우는 만덕씨네 고물상회
[감상]
<살구 냄새>라는 후각의 정조에서 <젖 큰 여자>와의 <눈마중>까지 맛깔스럽고 훈훈한 시선이 재미있습니다. 후각은 타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방식이지요. 사람에게는 가장 하위 감각이 후각이라지만 이 시에서는 예민한 감성의 질료가 되는군요. 버려진 고물들에서 <숨은 보석>의 발견과 <불알>을 상징하는 <살구나무>와의 동거, 정말 <농담처럼> 풋풋한 활력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