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들》 / 이경림/ 《문예중앙시인선》(근간)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신생아실에서)
- 상자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얼마나 험한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투성이 주름투성이의 몸으로 조막만한 인류가
지금 막 도착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울음을 그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형광등 불빛을 보다가
창 쪽을 보다가
희고 높다란 벽을 보다가
흰 옷에 흰 투구를 쓴 직립의 괴짐승들을 보고는 그만
무슨 입맛 돋우는 먹을거리라고 생각했는지
라일락빛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가만가만
가까운 허공을 긁어보는 것이었는데
[감상]
<전대미문>이란 매우 놀라운 일이나 새로운 것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이 시는 <신생아>를 그 어떤 독립된 지적 생명체로 비유해, 마치 외계인의 등장처럼 형상화시킵니다. 일상적으로 여겨왔던 생명 탄생이 충격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지요. 그 낯섦의 시선으로 태아는 <피투성이 주름투성이의 몸>이 되고, 간호사는 <흰 옷에 흰 투구 쓴 직립의 괴짐승들>이 됩니다. 신생아를 세밀하게 포착, <그>의 호기심으로 표현한 3연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