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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 강성은

2005.10.26 16:24

윤성택 조회 수:2127 추천:240

〈12월〉/ 강성은/ 《문학동네》 2005년 신인당선작 中


        12월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 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


[감상]
<12월>이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정조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각기 다른 색깔과 재질을 가진 텍스타일을 이어붙여 만든 조각보처럼 보인다. 이 보자기의 각각의 조각들은 시를 쓴 사람의 교묘한 바느질에 의해, 시적으로 변용된다>라는 심사평이 있군요. 다시 말해 이 시는 예측 가능한 일상적 어법을 기술적으로 빗겨가며, 그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시킨다고 할까요. 이러한 표현이 주관적이면 주관적일수록 개성이 돌출되겠지요. 더불어 일상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추동력은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겠다 싶고요. 비단 이 시가 기존의 방식을 극복하려는 단순한 언어 조립은 아닐 터입니다. 보편성 없는 개인적 상징이 초현대성으로 자리바꿈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요. 깔끔한 추상 유화처럼 불온한 청춘이 <12월>에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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