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나금숙/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흐린 하늘
흐린 하늘은
많은 씨방을 가졌다
물알갱이로 된 씨방들은
가끔 제 부피를 견디지 못한다
기류가 일렁일 때
얇아질대로 얇아진 껍질이
터지곤 한다
산화하는 물방울들
물의 씨앗들
텀벙
물상 안으로 튀며 뛰어든다
사물들은 가슴께가 간지럽다
윤곽들 흐려지며
경계가 무너진다
흐린 하늘이 스며
사물들 모두 물의 씨앗을 갖는다
[감상]
'물의 씨앗'이라는 강렬한 상징이 이 시의 착상입니다. 이런 비유로 인해 상상력의 폭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비 오는 날 구름의 형상과 작용이 '씨방'이 되고, '빗방울'은 씨앗의 형세로 끝없이 변주됩니다. '씨방'과 '씨앗'의 순환을 통해, 자연에 대한 생명 인식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씨방을 가진 하늘 제 피부를 견디지 못하고
쏟아지는 빗방울....
사물들이 가슴께가 간지럽다가 모두 물의 씨앗을 갖고,
저도 이 시가 기발하다고 생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