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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 정병근

2005.11.03 11:51

윤성택 조회 수:1882 추천:227

〈옥상〉/ 정병근/ 1988년 《불교문학》으로 등단


        옥상

        몸빼에 난닝구바람의 늙은 여자
        축 늘어진 젖통 다 보인다
        여자는 저 젖통으로 시퍼런
        허기를 먹여 살렸을 것이다
        팔일오와 육이오를 올망졸망 데리고
        보릿고개를 넘어왔을 것이다
        벽돌로 막은 한켠에
        토마토와 고추 모종이 심어져 있고
        월경처럼 꽃 몇 송이 피었다
        꽃이란 무엇인가
        백주대로의 섹스처럼
        염치도 수치도 모르는 꽃
        세월이나 가난 따위는 더더욱 모르는 꽃
        늙은 여자 슬레이트 처마에 반쯤 가린 채
        태평양 같은 골반을 벌리고 앉아
        고무 다라이에 무언가를 치댄다
        기울어진 TV 안테나는 통 기억이 안 나고
        배고픈 빨래집게들 때 묻은 허공 하나씩 물고
        해가 닳도록 쪽쪽 빨아먹고 있다


[감상]
이 시대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베푼 사랑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상징입니다. 그야말로 고정 관념으로 굳어진 것이지요. 그 상징을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순간, 모든 의미들이 그 관념 안에 블랙홀처럼 휩쓸려집니다. 그래서 새로움과 신선함을 요구하는 시의 입장에서는 좀더 다른 시각, 좀더 다른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시는 <늙은 여자>의 집요한 묘사로 고단한 시대를 살아온 한 어머니를 조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시 텃밭의 <꽃>처럼 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옥상이라는 협소한 공간을 하루 종일 오가는 <늙은 여자>가 쓸쓸한 정경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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