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배영옥/ 《문학과사회》 2005년 가을호
흔적
동구시장 공중화장실 여닫이문에 둥근 자국이 나 있다
연두색 칠이 환하게 닳아있다
손바닥 온기와 급하게 서두르는 힘이 만든 자취,
사람들은 제 손바닥으로 그 곳을
밀고 갔을 것이다
밀어내도 밀어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닫이문은
자기도 모르게
저런 흔적을 받아 안은 것인데, 그 자국 또한
중심에서 거리가 한참 멀어서
여닫이문은, 바닥에서 짐짓 한 뼘쯤 떠올라 있다
[감상]
사람들이 드나들며 화장실문을 밀 때 손이 닿는 지점에서 시가 왔습니다. 일상의 공중화장실을 포착하는 시선이 좋습니다. 또 거기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흔적>, <중심>의 발견도 돋보이고요. <둥근 자국>, 작은 키에서 큰 키에 이르기까지 손의 위치와 높이에 따라 원의 반경이 그려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둥근 자국>의 중심이란, 사람들이 투사해낸 문에 관한 최적의 소통지점입니다. 마음에도 드나들 때 손닿는 위치가 있어, 닳아 가는 그 흔적이 사랑이 되고 그리움이 되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