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발관〉/ 안시아/ 200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월남 이발관
산동네를 삼대 째 지키고 있다
창문 너머 면도거품 같은 구름 지나가면
이발사는 하얗게 아침을 부풀린다
어긋난 문틈에서 비어져 나온 삼색 싸인볼은
늘 제자리로 시간을 회전시킨다
머리칼을 움큼 뜯어내던 낡은 바리깡은
그녀가 배웅하던 나트항 항구까지
금방이라도 들쭉날쭉 길을 낼 것만 같다
초침처럼 가위가 째깍거리고
삼십 년 단골은 의자에 기댄 채 잠이 든다
쿵더쿵 바퀴를 움켜쥐던 고향 길처럼
사람들 이 곳에서 시동을 꺼뜨리기도 한다
뒷목을 주무르다 올려다보면 천장의 선풍기
우두두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어느새 퀴논 상공에 떠 있다
어디쯤에서 철모를 잃어버렸을까
오랜 편두통처럼 그 자리, 욱신거린다
연탄난로는 연통으로 긴 숨을 고른다
철사줄에 널린 수건에 햇살이 개켜지면
한 나절을 데운 연탄재가 가게 앞에 놓인다
날을 벼리며 새운 숱한 밤들,
이발사는 까만 숫돌 위에 물을 끼얹는다
어둠으로 철조망을 두른 골목마다
조명탄처럼 터지는 별빛이 총총하다
[감상]
산동네 이발소가 깔끔한 묘사로 그려져 있습니다. 곳곳 표현들은 사물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관 표시와 난로 철사줄에 걸려 있는 체크무늬 빨강 파랑 수건들, 또 둘러보면 포마드 크림도 있겠고 면도칼을 갈던 빛바랜 가죽혁대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의 빼어난 점은 이발사의 <월남참전>이라는 서사를 잇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국의 땅에서 처절하게 겪은 전투의 상흔이 선풍기 <프로펠러>에 오버랩 되면서 영화적 상상력으로 환기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화자에 이르기까지 대물려온 산동네 이발소가 그래서 더 뭉클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도 언젠가 저 이발소, 네모란 청색 타일이 촘촘히 박힌 세면대에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이발사가 물조리로 부어주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만큼에서 이 시가 마음에 헹궈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