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 박유라/ 《현대시인선22》
가을이 주머니에서
-사진1
찰칵, 낙엽을 꺼낸다
아직 핏기 마르지 않은 부고 한 장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려 고양이, 라고 읽으며
1280×960 파인더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지나가는 한 컷
고양이가 껍질 벗긴 장어 한 마리를 훔쳐 물고 달아난다
명산장어에서 한 칸 공터를 지나 오동도횟집까지
햇살을 파닥이며 바람이 재빨리 불고 간다
피복 벗겨진 고압선처럼
몸에서 꺼낸 한 줄기, 그림자가 시뻘겋게 감전되는
오후 1시 30분 저기 한 칸 빈 주머니에
지-지-직 섬광이 지나갔던 걸까
고요 속에 파들거리고 있는 그녀를 관통하여
찰칵, 낙엽이 진다
[감상]
낙엽 사진에서 분화되어가는 이미지가 중첩되거나 혼융되어, 절묘한 현재를 경험케 합니다. 카메라가 그러하듯 이 시의 소통 기반은 셔터를 누르는 전자기적 신호로 연결됩니다. 그리하여 낙엽은 이제 시선 속에서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순간 디지털화면에서 낙하를 경험하는 것이지요. 각기 소재를 인과에 맞물리고, 거기에서 의식의 흐름을 상상력이라는 끈으로 연결시켰다고 할까요. <껍질>과 <피복>, 단풍을 연상케 하는 <감전>, 그리고 <카메라>와 <그녀>의 합일,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찰나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