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 임동윤/ 《문학의전당》(근간)
겨울 그림자
연 이틀 눈이 내린다
읍내로 가는 길은 진작 끊기고
나지막한 양철지붕 길길이
눈이 쌓인다
처마가 낮아진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마당귀에 날아와 모이를 찾던
참새 떼도 몰려오지 않고
삽살이도 툇마루 밑에서 눈을 감고 있다
바람이 추녀 끝을 빠르게 스쳐 가면
소나무 허리 꺾는 소리만 환하다
뚝뚝, 모든 것이 어두워진다
지붕이 무너지고
반쯤 썩은 싸리나무 울타리가
모로 누우며 관절을 꺾는다
하늘과 땅이 아득해진다
[감상]
남쪽지방에는 지금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군요. 이 시를 읽으니 행간과 행간 사이 그 눈 오는 풍경이 느껴집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들지 않고, 또 그렇게 무언가를 위해 치장하지 않은 채 다만 담담한 서정의 마무리가 편안하다고 할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의 장점은 눈 오는 저물 무렵 <정적>이라는, 그 무한한 사색의 깊이를 제공한 데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풍경의 입체감 너머,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감지해낼 수 있는 오감의 확장 같은 것입니다. <내 몫의 삶과 사물들에게 절절한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 시는 다름 아닌 서정에 대한 내밀한 공감, 그 시선입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