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의 독법>/ 나혜경/ 《시와정신》2005년 가을호
담쟁이덩굴의 독법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감상]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을 담쟁이덩굴로 바꿔내는 발상이 문장에 탄력을 줍니다. 겨울에 앙상하게 말랐다가 봄에 다시 잎을 매달고 올라서 여름에 초록으로 뒤덮는, 그 반복적인 과정이 '완독'을 향해 나아가는 지적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렇듯 '독서'가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비유방식은 의식하던 하지 않던 간에 앞으로도 여러 가지로 변주되거나 모색되겠지요. 그럼에도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인상적이어서, 담과 지붕을 초록으로 뒤덮을 이번 여름을 기대케 하는군요.
사물을 바라보는 힘... 다시 한번 가슴에 담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