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論》/ 마경덕/ 《문학의전당》(근간)
가방, 혹은 여자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
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
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
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
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
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
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감상]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현모양처이자 정실부인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남성 중심의 사고가 불러온 신화 같은 거지요. 이 시에서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겪는 비극이,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표출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방>은 그녀의 탈출 도구이자, 끝내 버릴 수 없는 것을 모아둔 자의식의 공간입니다. 단서처럼 제시된 <그녀>의 과거는 시어머니 <잔소리>와 <부릅뜬 남자의 눈알> 폭력성으로 점차 가부장사회에 희생되어가는 운명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슬픈 건 자기분열적인 광기의 행위인 <접시 던지기>가, 다시 <깨진 접시 주워 담기>로 감내되는 고통에 있습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손으로 주워 담는 서늘한 풍경은, 사실은 묵묵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와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 시인의 첫시집에서 보여주는 세상과 인간의 합일, 화해 그리고 변치 않는 모성이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그간 마경덕 시인이 <네이버>라는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꾸준하게 선도해주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겠습니다. 2004년 5월경부터 꾸준하게 누리꾼들에게 문학성 있는 시를 연결시켜주는 산파역을 해줌으로서, <네이버>만큼은 대중지향적인 최루성 계통의 연애시가 주류에서 사라지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시는 그야말로 인간의 영혼 진화를 담당하는 순수한 에너지입니다. 앞으로도 <내 영혼 깊은 곳> 그 순수한 시적 에너지가 늘 충만하길, 문학성 있는 시집이 대중성 너머 후련한 베스트셀러가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