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 유문호/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
벽
어느날 인사동 일방통행 길에
나, 체증처럼 얹혀 있었네
오랫동안 만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와 책갈피처럼 마주앉아 있었네
그는 그대로 서른을 살았고
나는 나대로 또 서른을 살았네
우리들의 페이지는
오랫동안 만났고 만나지 못했던
그곳에서
한 장도 넘겨지지 않았네
[감상]
운명이라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 안 일생 어느 한 페이지가 넘겨졌거나, 다 넘겨지지 못한 인연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 페이지와 페이지는 서로 겹쳐지지 못하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대로 서른을 살았고/ 나는 나대로 또 서른을 살았네>에서 와닿은 느낌, 세월에 대한 애틋함이랄까요, 우리의 인연이 이제야 겹쳐져 온전히 목록으로 남겨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 숨 막히는 <벽>이라는 정적, 내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 독해되는 순간에 이 시는 정지되어 있습니다.
ㅎㅎ 왠지 모르게 시원하내요^^
ㅋㅋ 좋은시 많이 읽고 갑니다!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