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제사> / 오자성/ 《시와정신》2006년 여름호
나무 제사
시를 쓰면서 제일 미안한 건
나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는 가족이 아니다
시를 가르쳐 준 선생님도 아니다
못난 내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도 아니다
한 편의 시가 게기며 나올 때마다
어떤 한 나무가 희생당하고
한 권의 시집이 나올 때는
어떤 한 나무가족이 집단학살 당한다
하여 한 편의 시를 쓰는 날은
한 나무의 제삿날이다 미안하다
나무여, 내 못난 폭력을 용서해주게나
약속하겠네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네
너에게 제사를 지내겠네
그리고 내 죽으면 수목장(樹木葬)으로 죄를 갚겠네
네가 제사를 지내주게나
등뼈 휜 신성이여
[감상]
우리나라는 종이의 주원료인 나무를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다는군요. 시는 지극히 주관적인 산물입니다만 이 시를 읽고 나니 안이한 글쓰기에 대한 일갈이 느껴집니다. 이 시대의 양심인 책들은 모두 나무를 <집단학살>해 얻어진 전유물인 셈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 한 편을 쓸 때마다 <내 못난 폭력을 용서해주게나>를 읊조리며 <제사>를 지내는 심정이 됩니다. 기실 나무가 자라기까지 빛과 물과 흙을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 또한 모두 하나로 연결된 상호의존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일이, 시집을 내는 일이 나 하나로 국한된 실존의 것이 아니라 우주까지 확장된 인연에 잇대는 것입니다. 무언가 잊고 있었던 걸 깨닫게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