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방> / 김수우/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파도의 방
머리맡에 선고처럼 붙어 있는 사진
엄마와 동생들, 내가 유채꽃밭에서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서 아버진 삶을 집행했다
깊이 내리고 오래 끌고 높이 추어올리던 그물과 그물들, 종이배를 잘 접던 일곱 살 눈에도 따개비지붕 단칸방보다 벼랑지던 방
평생이었다 고깃길 따라 삐걱대던, 비린내와 기름내 질척한 유한의 방에서 아버진 무한의 방이 되었다
여섯 식구 하루에 수십 번씩 열고 닫는
기관실 복도 끝에 있던 그 바다의 방을 육지에 닿은 십 년내 지고 왔는지 스무 명 대가족사진 속
소복소복 핀 미소에서 어둑한 방 하나 흔들린다
칠순 아버지의 굽고 녹슨 방, 쓸고 닦고 꽃병을 놓아도 아직 비리다 아무리 행복한 사진을 걸어도
생이 얼마나 비리고 기름내 나는 방인지 겨우 눈치챈다
방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연다
집행된 파도들이 환하다
[감상]
평생 어부로 사셨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그 당시 살았던 방이 어우러져 <파도의 방>으로 완성되는 시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들 단칸방의 항해사였고 그 험난한 풍랑을 견디며 한 시대를 이끌고 왔던 것입니다. 삶의 공간이었던 <방>이 <기름내 질척한> 기관실로 오버랩 되면서 파도에 흔들리듯 역동적으로 읽힙니다. 결국 이 시의 <생이 얼마나 비리고 기름내 나는 방인지>는 저 망망대해 불빛 하나로 흔들리는 고깃배의 쓸쓸함이어서 그 풍경이 더 아련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