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부는 참새> / 함기석/ 《리토피아》 2006년 가을호
하모니카 부는 참새
무더운 여름오후다
참새가 교무실 창가로 날아와 하모니카를 분다
유리창은 조용조용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하모니카 속에서
아주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온다
물고기들은 빛으로 짠 예쁜 남방을 입고
살랑살랑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교무실을 유영한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선생들 귓속으로 들어간다
선생들이 간지러워 웃는다
책상도 의자도 책들도 간질간질 웃으며
소리 없이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선생들도 흘러내린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하고 시원한 물소리에
복도들 지나던 땀에 젖은 아이들이
뒤꿈치를 들고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수학선생도 사회선생도 국사선생도 보이지 않고
교무실은 온통 수영장이다
[감상]
상식이 모든 일상을 컨트롤 하면서, 우리는 잘 놀라지도 않고 쉽게 감동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상식으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에게는 새로움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생이 그 상식 안에서 벗어나질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상식 밖의 시원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하모니카'로 청각을 갈아입은 모양이 참 신선합니다. 무료하고 무덤덤한 풍경이 '아주 작은 물고기'에서 '수영장'으로 바뀌면서 상식은 아예 흘러내리는 '물'처럼 덧없어집니다. '조용조용' 등과 같은 반복이 물결처럼 살랑이고, 수영장인 교무실에 고무튜브 하나 던져 넣고 싶어집니다.
아, 수영장, 수영장!
여름 내내 뛰어들고 싶었던 곳.
이젠 조금 사그라든 내 수영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