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고시텔 3>/ 박순원/ 《서정시학》2006년 여름호
용문고시텔 3
이 오래된 건물은 귀신 천지다
옆방 문이 세게 닫히면
내 방문이 찰칵 열린다
지하에는 노래방 귀신이
새벽 두 시까지 쿵짝거린다
그래도 인간도 귀신도 안중에도 없는
폭주족 귀신보다는 낫다
옥상에는 고양이 귀신 옆방에는
코고는 귀신이 산다
나는 술 먹는 귀신이다 열쇠
잃어버리는 귀신이다 앞방에 이혼한
에로비디오 귀신이 유일한 술친구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풍을 치다가
곧장 노래방 귀신이 된다
고개가 외로 꺾이고 다리도 저는 귀신은
뭐해 먹고 사는 귀신인지 모르겠다
구두도 열심히 닦고 이를 닦는 것도
몇 번 보았는데 내가 짐짓
안녕하세요 똑 떨어지는
인간의 말로 인사를 하면 흘깃
귀신의 눈길로 받아준다
제대로 된 귀신이다
이 건물은 많이 낡아서
가벼운 귀신들이 기대고 있기 좋다
[감상]
고시원 혹은 고시텔의 구조는 2~3평 각기 독립된 작은 쪽방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고 방음이 완벽하지 않아 서로 간 침묵이 규율화된 곳입니다. 그렇다보니 이곳의 속성은 철저한 익명성에 있습니다. 이 시는 그런 공간적 상황을 리얼하게 반전시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건물 고층 고시텔에 머무는 사람들이 <귀신>으로 명명되면서 삶의 국면들이 풍자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모든 귀신의 정보는 청각과 시각으로 상상되어 현실에 활착됩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시텔에 오게 된 사람들에겐 누군가의 관심이란 불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필 구두를 닦거나 양치질에 몰두 할 때 인사를 했을까요? <웬 인사?>하면서 휙 올려다보는 그들의 시선이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고단한 이웃들에 대한 즐거운 풍자.
지난 토요일 마음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박(순)원 시인을 흘깃 보았답니다.
한 상에서 식사를 했어도 물론 말 한 마디 건네진 못하고 다만 "흘깃' 보았을 뿐이지요.
윤재철의 <삶은 아름다울지라도>를 연상시키는
박 시인의 2005년 <서정시학> 신인상 당선작을 놓고 갑니다.
그리고 똑똑한 <리트머스>가 먼길 헤메지 않고 단숨에 잘 찾아왔더라구요.
제 습작에 시약 노릇을 톡톡히 하리라 기대합니다.
고맙게 잘 읽겠습니다.
장례식장 가는 길
박원(박순원)
자켓 와이셔츠 양복바지
넥타이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려
뒷좌석 손잡이에 걸려
흔들거린다
나는 운전 중이다
선그라스를 쓰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새 차 여섯 대를 겹쳐 실은 트럭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터널을 지나 다리를 건너
이 산중턱에서 저 산중턱으로
길 바깥쪽은 허공이다
핸들을 확 꺾어 길 밖으로 날아오르면
차 양옆에서 날개가 펼쳐지고
다른 세상으로 기우뚱기우뚱 날아간다
가로질러 가로질러 가는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다
길의 막바지에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실려 가는 돼지는 할 일이 없어
저희들끼리 웅성거린다
뒷자리에 걸려 있는 자켓도
자켓 안주머니의 하얀 봉투도
봉투 속의 지폐 몇 장도
할 일이 없어 그저
흔들거린다
<서정시학>, 2005년 겨울호.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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