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의 하루>/ 조인호/ 《문학동네》2006년 신인상 당선작 中
도너츠의 하루
잘 튀겨낸 도너츠일수록 구멍은 둥글다
팔팔 끓는 기름마냥 꿈자리가 사나운 밤 속에
몸을 담갔다가 일어난 아침 둥근 창문을 열면
바람은 밀가루 반죽처럼 배배 꼬이면서 불어온다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지문이 내 몸에 하얀 밀가루 자국을 남기는
오늘은 이상도 하지
바로 시원하게 구멍난 도너츠의 하루이다
옷을 입으면 툭툭 떨어지던 단추들은 모두 어디로 굴러갔을까
우유배달원 대신 현관문을 두드리는 건 옆집 아줌마의
둥근 훌라후프 사이로 빠져나온 뱃살 소리
나는 그 출렁출렁한 물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늘 내 목에 얹힌 둥근 올가미 같은
하루를 꾸역꾸역 삼켜야 한다
목마른 듯 덜 깬 잠은 커피처럼 하루 내내
몽롱한 향기를 풍긴다 혹은 도너츠에 솔솔 뿌린
설탕가루를 입가에 잔뜩 묻힌 채 지하철 입구로 들어서면
우르르 달려드는 개미떼, 구멍난 내 몸을 짊어지고
순식간에 열차 한 귀퉁이로 몰아내는
오늘은 이상도 하지,
박스 포장된 일터 안에서도 내 몸에 난 구멍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화장실 가듯이
동료들은 내 몸을 통과하여 변기 구멍에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린다
꾸르륵, 다시금 나의 구멍난 하루가
내리막길 바퀴처럼 어딘가로 끝없이 달려가는 소리
온종일 귓구멍에서 울려대는
오늘은 이상도 하지,
바로 시원하게 구멍난 도너츠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감상]
<도너츠>의 둥근 모양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를 하나의 궤로 연결시키는 솜씨가 있는 시입니다. 시적 대상으로부터 사유가 한정되지 않은 점도 돋보입니다. 이는 도너츠에 대한 관찰, 즉 도너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뼈대로 하고, 말랑말랑하고 발랄한 감수성을 살로 붙였다고 할까요. <단추>, <훌라후프>, <올가미> 등 <둥글다>로 환유되는 흐름을 짚어가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습니다. 낯익은 일상들이 낯설게 보이는 말 그대로 <도너츠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