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식사》/ 박홍점/ 《서정시학》(2007)
수전증
누군가 그를 연주하고 있다
열 개 손가락이 현악기의 줄처럼 떤다
벙어리 악기,
일제히 소리 나지 않는 악기 위로 쏠리는 눈빛들
입 안 가득 모래를 머금어서 모두들 말이 없다
차마 소리로 표현하지 못한 그의 이력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린다
집게발을 쳐들고 알을 터는 꽃게 같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알 수 없는데
온몸의 가지들이 바람을 탄다
뜨거운 물을 붓던 주전자가 컵의 테두리를 벗어나
살얼음 같은 유리에 금이 간다
바람이 바람을 부른다
내가 만지는 컵이며 재떨이 따위가 흔들린다
눈빛이 머무는 것마다 덜덜 떠는
오그라붙는 방안의 사물들,
사물의 심장들
그가 돌아간 뒤에도 연주는 남아 어른거린다
흘러간 그의 연주를 오래 듣는 생살의 밤이다
[감상]
손이 떨리는 증상을 수전증이라고 하는데, 이 시는 그 증세를 현악기의 줄처럼 떠는 <연주>로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합니다. 더욱이 수전증의 그를 연민으로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물의 심장>까지 직관하는 대목도 깊이가 더해집니다. 어쩌면 <차마 소리로 표현하지 못한 그의 이력>은 알콜 중독이든 신경쇠약이든 니코틴 중독이든 삶의 벼랑까지 내몰린 안타까운 것이어서 모두들 <입 안 가득 모래를 머금>은 듯 침묵하는지도 모릅니다. 제 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순간이 왔을 때 찾아오는 이 떨림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연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