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길상호/ 《시작》 시인선 (2007)
비의 뜨개질
너는 비를 가지고 뜨개질을 한다,
중간 중간 바람을 날실로 넣어 짠
비의 목도리가, 밤이 지나면
저 거리에 길게 펼쳐질 것이다,
엉킨 구름을 풀어 만들어내는
비의 가닥들은 너무나 차가워서
목도리를 두를 수 있는 사람
그리 흔하지 않다,
거리 귀퉁이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새벽녘 딱딱하게 굳은 몸에
그 목도리를 두르고 떠났다던가,
버려진 개들이 물어뜯어
올이 터진 목도리를 보았다던가,
가끔 소문이 들려오지만
확실한 건 없다,
비의 뜨개질이 시작되는 너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 말고,
빗줄기가 뜨거운 네 눈물이었다는 것 말고는
[감상]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질 때 시는 진정 시다워집니다. 이 시는 <비>에 대한 익숙한 시선을 무효화하고 낯설게 그리고 새롭게 존재를 재탄생시킵니다. 빗방울 하나 하나가 한 땀 한 땀 정성어린 뜨개질이 되는 순간, 번들거리는 빗물의 흐름은 목도리로 펼쳐집니다. <바람을 날실로 넣어>짜거나 <엉킨 구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시인만의 발견인 것입니다. 손의 온기를 생각하다보니, 그녀와 영영 헤어지고 비를 맞으며 걸어온 사내가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지는군요.
부레가 눌려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심해의 물고기는 제 몸에서 물의 비중보다 낮은 기름을 만들어냅니다. 시인은 시작의 지향점을 자서에 이와 같이 밝힙니다.
“심해로 들어간 물고기는/ 가혹한 수압을 견디기 위해/ 부레 속에 기름을 채운다,/ 물고기의 부레를 꺼내 불붙이면/ 활활 세상은 밝을 것이다,/ 나의 시는 언제/ 심해에 다다를 것인가?”
2월 말부터 정신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드디어 조금의 여유가 생겨 들어와 보니 진작에 올려 놓으셨네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라서 일까요...
아직도 책상 가득 서류들이 자신이 선택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한동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길시인님께 시집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서.... 또,시집의 제목을 듣고서.....
왠지, 참 많이 달라졌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느낌으로 다가올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뭐랄까..... 하고싶은 말은 참 많은데.... 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라 그저 감사히 잘 읽었다는 말씀만 적습니다.
너무나 기다렸던 시집의 시를 하루라도 빨리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로, 전 윤시인님의 팬이라는 것 또한 잊지 말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