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뜬한 잠》 / 박성우 (2000년《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창비》 (2007)
물의 베개
오지 않는 잠을 부르러 강가로 나가
물도 베개를 베고 잔다는 것을 안다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
오종종 모인 마을이 수놓아져 있다
낮에는 그저 강물이나 흘려보내는
심드렁한 마을이었다가
수묵을 치는 어둠이 번지면 기꺼이
뒤척이는 강물의 베개가 되어주는 마을,
물이 베고 담든 베갯머리에는
무너진 돌탑과 뿌리만 남은 당산나무와
새끼를 친 암소의 울음소리와
깜빡깜빡 잠을 놓치는 가로등과
물머리집 할머니의 불 꺼진 방이 있다
물이 새근새근 잠든 베갯머리에는
강물이 꾸는 꿈을 궁리하다 잠은 놓친 사내가
강가로 나가고 없는 빈집도 한 땀,
물의 베개에 수놓아져 있다
[감상]
오지 않는 잠을 부른다, 물도 베개를 베고 잔다는 발상이 담백합니다.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강물을 생각하자니 한 폭의 동양화처럼 원근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조용하고 쓸쓸한 이 풍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무너진 <돌탑>에서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듯 <당산나무>, <암소>, <가로등>, <불 꺼진 방>이 차례로 포착됩니다. 무엇보다도 베개에 수놓아진 수[繡]에서의 섬세한 관찰이 탁월한데요, 마지막 <빈집>을 바느질할 때 실을 꿰어 한 번 뜬 자국으로 묘사한 부분이 참 살갑니다. 강 건너 하늘에서 바라보면 강은 물결무늬가 밴 베개이고 마음 눕히기 좋은 세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