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안쪽> / 정철훈 (1997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 《서정시학》 2006년 겨울호
허공의 안쪽
사십구제를 마치고 하룻밤 묵으러 들어온 산방(山房)
파리 한 마리가 방안을 휘돌아치며 붕붕거린다
천장이며 벽이며 창문에 몸을 찧기 여러 차례
허공이 있었는지도 깜박했는데
파리 한 마리가 허공에도 길이 있다며
갈지자로 휘적거린다
허공안에 또 한 겹의 허공이 있다는 듯
머리가 깨져라고 부딪치는 날파리
망자는 어디로 간 걸까
화장터에서 곱게 빻아온 유골 단지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속에
망자가 없는 건 분명한데
파리가 그려놓은 허공이 내 안에 가라앉고 있다
나는 마당에 나가 달 구경을 하고
날벌레들은 방안에 들어와 형광등 구경을 하고
내가 망자에 대한 생각으로 골똘해 있을 때
파리며 하루살이며 나방이며 질겁한 날벌레들은
망자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영혼의 벽에
쉴새없이 부딪치고 있다
파리가 그려놓은 허공의 안쪽
붕붕과 휘적휘적 사이
[감상]
이 生에서 삶의 저편이 죽음이라면 어딘가 죽음과 삶의 경계가 존재할까,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시인은 그 경계를 <영혼의 벽>으로 통찰해냅니다. 날벌레들이 살고자 몸부림치는 불빛 아래가 사실은 죽음의 경계이듯, 망자 또한 그토록 집착했던 것들이 사실은 죽음의 경계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는 그래서 날벌레와 화자의 대별되는 상황 설정이 의미를 깊게 합니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이라든지, 화자가 달 구경할 때<날벌레들은 방안에 들어와 형광등 구경>한다는 표현들이 그러합니다. 허공의 안쪽에는 이렇듯 산 자와 죽은 자가 겹쳐지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상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첫 행에 오타 난 것 같네요.
*사십구재 [四十九齋]
[명사]<불교> =사십구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