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족』 / 이동호 (2004년 『대구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 《문학의전당》 (신간)
수화(手話)
그는 나무다 상록수다 그의 입은 가지이고
그의 언어는 푸른 잎이다
그가 나이테에 가둔 말을 풀어낸다
그는 가지 가득 말을 올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으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은 잎사귀를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푸른빛이 시끄러울 뿐이다
대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가 잎을 오물거린다
잎이 점점 심록색(深綠色)이라는 것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증거
그가 자신의 가지를 흔든다
사람들은 멀찌감치 멀어져서 곁눈질이다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
방언이 깊어 사람들은 늘 가을이다
불필요한 상징을 없애고 나면
늘 그와의 앙상한 거리를 드러낸다
그와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삶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나무다
자신의 말에 늘 찔리는 상록 침엽수다
오늘도 대문 밖에서 그가 푸른 잎을 떨군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
[감상]
독자로 하여금 들리지 않는 수화(手話)로 하여금 목소리를 듣게 하는 시입니다. 이 시가 군더더기 없이 긴장을 주는 이유는 명료한 직관인 <사람들도 나무다 단풍나무다>라는 상상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나무와 나무의 간격에서 사람살이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것이나, 또한 그 거리가 <삶이다>라는 발견도 돋보입니다. 마치 비행기의 굉음처럼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도/ 귀를 막는다>는 나무의 푸르름, 시각이 청각으로 넘나드는 상상이 후련하게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