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밤 낚시터 - 조숙향

2007.08.01 12:02

윤성택 조회 수:1239 추천:120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 조숙향 (200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로 등단) / 《겨울숲 7인 시집》 시평사  


  밤 낚시터

  낚싯대를 드리우고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던 노인이 어
둠에 취해 있습니다. 어둠을 실컷 마시기에는 그의 주량
으로는 아직 무리인가봅니다.  낚싯대 끝이 가늘게 흔들
립니다. 강의 내장을 끌어올렸던 노인의 손이 노래를 한
발 장전합니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적막을 쏟아붓습니
다.  촘촘한 갈대숲 사이를 지나친  한 줄기 바람이 강기
슭을 돌아갑니다. 그는 살아온 연륜 같은 어둠을 건져올
려 이따금 안주로 씹습니다. 낚싯줄이 레코드 핀처럼 박
히고, 거나하게 취한 강물이 레코드판을 돌립니다. 흘러
간 옛 노래들은 아픕니다. 어둠이 한잔 술을 따릅니다.



[감상]
새벽녘 안개와 섞여 짙게 깔려 내려앉은 풍경이 선합니다. 낚시를 떠올리면 항상 물내음이 생각납니다. 그 비릿한 느낌은 왠지 설레이기도 하고 또 왠지 쓸쓸하기도 합니다. 이 시는 낚시를 하는 노인과 그 배경을 카메라처럼 잔잔하게 훑어갑니다. 취하는 것이 어디 술 뿐이겠습니까, 마음도 취하고 강도 취하고 다만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만 깨어 있겠지요. 낚싯줄로 반응하는 물의 파문을 레코드판으로 비유한 <낚싯줄이 레코드 핀처럼 박히고, 거나하게 취한 강물이 레코드판을 돌립니다>의 구절이 매혹적이지요.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1111 로맨티스트 - 하재연 2009.11.17 928 108
1110 빈 손의 기억 - 강인한 2009.11.14 927 115
1109 해바라기 - 신현정 2009.11.13 999 118
1108 가랑잎 다방 - 황학주 2009.11.11 1032 133
1107 흩어진다 - 조현석 2009.11.10 929 139
1106 숲 - 이기선 2009.11.09 945 112
1105 사랑의 물리학 - 박후기 [1] 2009.11.05 938 105
1104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 허수경 2009.11.04 917 116
1103 아코디언 연주자 - 김윤선 2009.05.18 1588 124
1102 아무도 오지 않는 오후 - 고영 [2] 2009.05.07 2076 117
1101 그리운 상처 - 양현근 [1] 2009.04.23 2106 119
1100 검은 혀 - 김산옥 2009.04.21 1456 123
1099 요긴한 가방 - 천수호 2009.04.15 1473 120
1098 이 골목의 저 끝 - 정은기 2009.04.09 1782 123
1097 3월 - 최준 2009.04.01 1244 126
1096 촛불 - 류인서 2009.03.23 1464 110
1095 소각장 근처 - 장성혜 2009.03.18 1047 110
1094 본인은 죽었으므로 우편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 김기택 2009.03.13 1231 108
1093 장미 - 박설희 2009.03.09 1737 98
1092 바닷가 저녁빛 - 박형준 2009.03.03 1317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