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 / 《서정시학》 2007년 여름호
보고 싶은 친구에게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다른 노래를
내 목청껏 따라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 주기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감상]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갈까. 이를 증명하고자 존재론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가 많을수록 인간의 삶은 경이롭다는 점입니다. 이 시를 읽으니 빙의(憑依)를 원하는 화자의 간절함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낍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넘나드는 편지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인간 의식에 대한 연대를 넌지시 일러줍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는 죽은 친구 목소리를 암시하는 대목은 이 시의 숨겨 놓은 반전이겠지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마지막 연이 참 좋습니다.
스트라이크는 아니라고 해도
볼링공이 굴러가 우르르 핀을 넘어뜨릴 때의 그 기분,
짜릿하고, 흥분되고, 팔짝팔짝 뛰며 안기고픈.
친구에게 우르르 마음이 쏟아지는 그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