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 박제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 《문학마당》 2007년 가을호
전봇대
벽과 벽, 골목과 골목, 허공과 허공, 막다른 사이에는 언제나 그가 서있
다
그는 빛과 예언이며 또한 어둠과 상처였으니, 모든 기도는 그를 통해
전송되었지만 그로 인해 혼선도 빚어졌다 일용할 양식과 일자리를 구해
주기도 하였지만 장기매매와 성매매를 주선하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를
찾아주기도 하였지만 아이의 가출을 부추기기도 했다
취한 자나 떠돌이 개가 오줌을 갈길 수도 있겠지만, 그는 여전히 막다
른 곳에서 막다른 자에게 신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감상]
요즘 신도시에는 전깃줄이 땅 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전봇대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봇대 서 있는 풍경을 보게 되면 왠지 모를 고즈넉함이 밀려옵니다. 소읍이나 산동네, 그리고 구도시에서 전선으로 모든 이들을 잇대어 주기 때문이랄까요. 이 시는 전력을 전달하는 전봇대의 역할 외에 다양한 기능(?)을 발견합니다. 사람 시선 높이의 그 둥근 여백에 세상살이가 파노라마처럼 붙여졌다 떼어집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 중인 신의 큰 뜻을 알 수 없듯, 시인은 수없이 전봇대에 붙여오는 딱지와 사람들에게서 그 막막함을 보았을 것입니다.
책 읽기 무지 싫어하던 예찬이가 6학년 들어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요즘은 일기를 얼마나 잘 쓰는지, 날마다 A 플러스에, 엑설런트랍니다.
언젠가 아이의 일기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나네요.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읽고 "콩, 너는 죽었다."에 대해 썼던 글인데
"시인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젠가 미당 문학상을 받았던 시인이지요? 역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는데 <빈터>에서 이름 석 자
익혀 두었던 시인이라 눈여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