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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계보 - 홍일표

2007.11.05 17:16

윤성택 조회 수:1129 추천:116

『살바도르 달리風의 낮달』 / 홍일표 (1988년 『심상』, 1992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 《시작》(2007)


        태양의 계보

        누가 하늘의 구름을 끌어다가 압정을 박는다
        신록의 혓바닥이 심장처럼 파닥이고,
        가파른 언덕 위 흰 광목으로 휘날리던 햇살들이
        빙판으로 얼어붙어
        눈 밝은 천사들이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진다
        
        눈가에 맺히는 노래,
        마음 속 흐르는 음표들이
        콩콩 뛰며 나뭇가지 위를 오르내리는 저녁
        나무들 가슴 속에 불을 지피던 태양의 풀무질도 멎고
        딱딱하게 굳은 무덤의 엉덩이 밑에서
        노란 새싹들이 바동거린다
        
        온몸으로 거친 비탈을 받아 삼키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한 사내

        그를 지상에서 떼어낸 하늘이 슬그머니 등을 돌린 사이
        눈썹에 젖어드는 노을
        붉은 포도주로 성배에 넘치고,
        먹장구름 틈새에서 발굴된 태양의 붉은 혓바닥이
        지상의 터진 살가죽을 천천히 핥는다        


[감상]  
선이 굵은 거시적 관점에서 <태양>이 그려집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서는 계절이었고, 먹구름 사이 햇살이 간간이 내비치는 오후에서 저물녘까지의 풍경입니다. 이 시의 매력은 서정의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종교와 신화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천사들이 엉덩방아를 찌며 넘어진다>의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나무들 가슴 속에 불을 지피던 태양의 풀무질>처럼 대상에 대한 직관이 두꺼운 물감으로 덧칠하듯 강한 이미지로 중첩됩니다. 낯설어서 신선하다는 말, 이쯤의 작품을 두고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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