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 박제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 《애지》 시인선 (2008)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감상]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도 하나로 그러모아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안타까움, 염려, 두려움, 미련, 전이… 연마다 각기 드러나는 마음이 빗물에 섞이듯 촉촉한 그리움으로 색을 갖습니다. 그토록 가련하게 여겨졌던 <당신>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마지막 연은 관계의 역전을 보여줌으로서 주체와 객체의 벽을 허물어버립니다. “대개의 生生한 삶은/ 낮고 느리고, 어둡고 쓸쓸한 그곳에 있다.”는 시집 자서가 비 내리는 오후의 마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