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랑공원》 / 함기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 《문예중앙》시인선(2008)
첫 키스
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난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가는 호수가 보인다
눈이 예쁜 물뱀 하나 뭍으로 올라온다
꽃밭을 지난다
앵두밭을 지난다
탱자나무 울타리 지나 내게로 온다
흰 벽돌담 넘어 내게로 온다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어린 뱀은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너의 혀
두근두근 내 입술에 살을 비빈다
나의 입술에서
빠알간 금붕어들이 쏟아진다
빠알간 코스모스 꽃잎들이 쏟아진다
아 가을이다
나는 손을 쭈욱 뻗어
구름을 따 네 눈에 넣어준다
해와 달을 따 네 입에 넣어준다
하늘 가득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진다
[감상]
첫 키스의 황홀함을 기억하는지요? 누구에게나 겹겹의 마음 깊은 곳에 보드랍고 연한 그날의 이미지가 있을 듯싶습니다. 이 시는 그런 아련한 감정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비춰진 풍경이 아니던가요. 보려고 하는 것에만 눈의 초점이 고정되고 나머지는 다만 뿌연 여백일 뿐이니까요. 두렵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예쁜 물뱀>이 복잡미묘한 그날의 심경을 훑고 지나고, 촉감 하나로 정신의 무한한 공간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