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뢴트겐의 정원」 / 권오영 ( 2008년『시와반시』로 등단) / 『시와반시』2008년 여름호 당선작 中
뢴트겐의 정원
부서지고 금간 곳을 들여다보며
그는 또 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그가 하나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다
살과 뼈, 그 사이로 여전히 흐르는 피는
x선 사진 속에서 어둡다
어둠 속에서 뼈의 줄기들이 빛난다
빛나는 것들이 환하게 길을 열어 보인다
부러진 뼈마디, 쇠심 박힌 척추,
피맺힌 갈비뼈에서 자라는 꽃들
시속 백사십 킬로의 자동차에서 튕겨져 나온 사내,
몸의 흔적은 무성했다
살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잎사귀들,
진흙 속을 헤집고 나온 듯한 푸른 꽃들,
살갗을 뚫고 날아갈 것만 같은 은빛 나비들,
잠에서 깨어나는 애벌레들, 눈이 부시게
오랫동안 몸속에 불이 켜져 있다
부러진 뼈마디에 뿌린 씨앗들이 꽃을 피운다
살아있는 시체의 얼굴을 한
핏빛 냄새를 풍기는 붉은 정원
형광 불빛 아래서 살아나는 낮은 신음들을
하나씩 벽에 건다
벽에 걸린 채 살아나는 신음들을 만지며
그가 달아난 세계를 본다
[감상]
x선 필름 사진은 대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제 안 모습일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의학적 메시지가 필요치 않으니까요. 뢴트겐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 시에서처럼 필름 속 명암들이 푸른빛의 다른 세계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 사람의 고통과 절망을 짐작하는 x선 필름이 ‘몸속에 불이 켜져’ ‘뼈에서 자라는 꽃들’인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제 안에 정원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광합성 하는 206개 뼈의 정원 말입니다.
* 화가 한기창
인간의 뼈가 찍힌 섬뜩하고 엽기적인 필름을 오려 생명을 상징하는 한포기 화초를 만들어내고, 빛을 발하는 라이트박스 위에 붙여 탄생한 것이 '뢴트겐의 정원' 연작이다.
운동 좀 해야겠습니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제 안 모습이라...
누구나 고통은 있겠지요?
세상에 불구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객관화에 성공한 이 시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