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박후기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 창비시인선 305
사랑의 물리학
- 상대성원리
나는 정류장에 서 있고,
정작 떠나보내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안녕이라고 말하던
당신의 일 분이
내겐 한 시간 같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당신은
날 알아볼 수 없으리라
늙고 지친 사랑
이 빠진 턱 우물거리며
폐지 같은 기억들
차곡차곡 저녁 살강에
모으고 있을 것이다
하필,
지구라는 정류장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한시절
지지 않는 얼룩처럼
불편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울게 되었듯이,
밤의 정전 같은
이별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감상]
상대성원리를 나와 당신으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설명될까. 나와 당신은 원래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이제는 헤어져 각기 다른 삶과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은 바라봄의 차이로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겠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다른 인연을 맞이하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이 시를 읽다보면 가슴 한켠 아릿한, 이미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그 누군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됩니다. ‘지구라는 정류장’이 그러하듯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