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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 정양

2009.11.19 12:50

윤성택 조회 수:905 추천:109

  《철들 무렵》 / 정양 (1968년 《대한일보》로 등단) / 《문학동네》시인선(2009)

          대설

        마을 공터에 버스 한 대 며칠째 눈에 파묻혀 있다
        길들이 모두 눈에 묻혀서 아무 데나 걸어가면 그게 길이다
        아무 데나 들어서면 거기 국수내기 화투판 끝에
        세월을 몽땅 저당잡힌 얼굴들이 멸칫국물에
        묵은 세월을 말아 먹고 있을 외딴집 앞
        눈에 겨운 솔가지 부러지는 소리
        덜프덕 눈더미 내려앉는 소리에
        외딴집 되창문이 잠시 열렸다 닫힌다
        잊고 살던 얼굴들이 모여 있는지
        들어서서 어디 한번 덜컥 문을 열어보라고
        제 발자국도 금세 지워버리는 눈보라가
        자꾸만 바람의 등을 떠민다

        
[감상]
오래도록 눈은 내리고 쌓여서 온통 백색으로 뒤덮인 산야, 인간의 길이 모두 지워졌습니다. 빨갛게 코끝으로 전해져오는 눈내음, 그리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 소리…. 이 시에는 이러한 아련한 시골 정취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무 데나 걸어가면 그게 길’인 것처럼 자연은 저리 자유로운데,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세월을 몽땅 저당잡힌 얼굴’로 연상되는 농민으로서의 근심. 어쩌면 평생 농사지어도 갚지 못할 농가부채의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세상 근심 위로 눈은 계속 내립니다. 잊고 살던 얼굴 떠올리며 쓸쓸한 듯 외로운 듯 눈보라가 하염없이 들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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