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박소원 (2004년 『문학·선』으로 등단) / 《문학의전당·시인선》98
연리지
아무 소리도 깃들지 않는 적막한 나무에게
나는 오래된 연인처럼 기대고 서서
가만히 귀를 대었다 멀리서
보답하듯, 어떤 소리들이 건너왔다
내 귓속에 싱싱한 소리를 누가 전송하는가
뿌리의 간격을 치밀하게 밀어부친다
허공을 뚫어 가는 우듬지를
어둑어둑 두꺼운 나이테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의 수액이 닿는 푸른 몇 초,
밑으로만 흐르던 섬뜩한 고요가
허공의 임파선을 따라 솟구치듯 번져간다
드러난 내 뿌리 위에 스러지는 그림자가
그의 밑둥에 걸려서 조금씩 굵어지고
뚝뚝 이파리들 물 빠지는 소리
벌써 토막토막 관절 앓는 소리가
부고처럼 나풀거리며 허공과 허공을 건너간다
푸른 물이 드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절 가웃 달빛이 놀다가는 소리가
봇물처럼 밀려와 내 발톱 끝까지 돌고 있다
허공의 소리에 온몸을 푸르게 바치고 싶구나
[감상]
연리지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시는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화자인 나와 나무와의 ‘엉김’을 청각적으로 풀어냅니다. 마치 나무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들이 유려한 문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할까요. 시인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들은 기실 문학적 감수성에서 기인된 것일 것입니다. 나무와 소통을 이루는 이 대자연의 메아리가 여전히 곳곳에 흩어지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귀를 막고 마음을 닫고 여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부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