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천국》/ 이영광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 《창비시인선》318
죽도록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라는
학원 광고를 붙이고 달려가는 시내버스
죽도록 굶으면 죽고 죽도록 사랑해도 죽는데,
죽도록 공부하면 정말 죽지 않을까
죽도록 공부해본 인간이나
죽도록 해야 할 공부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저 광고는 결국,
죽음만을 광고하고 있는 거다
죽도록 공부하라는 건
죽으라는 뜻이다
죽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옥상과 욕조와 지하철이 큰 입을 벌리고 있질 않나
공부란 활활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도
자정이 훨씬 넘도록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들이
어둠속을 질주한다, 죽기 살기로
[감상]
우리나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그 만큼 ‘학벌’이라는 평가 기준이 사회의 잣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적성이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아닌, 기형적인 입시위주 교육이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는 아포리즘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죽도록’이라는 수식이 과연 아이들에게 적정한가라는 물음이 이 시에 깔려 있습니다. 학원으로 과외로 이리저리 실려 다니는 학생들이 가련하다는 생각이 앞서는 건, '죽어가는 아이들을 실은 캄캄한 학원버스'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어라 공부하고, 연습할 때 저는 실컷 놀았거든요.
아니다, 눈치 보느라 노는 것도 제대로 못 놀았거든요.
서른 넘어 좀 제대로 눈치보지 않고 놀아본 것 같아요.
이제는 공부하는 일만 남았네요. 죽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