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편력>/ 천서봉 (2005년 『작가세계』로 등단) / 《문학수첩》2007년 가을호
구름 편력
셀 수 없는 구름들을 나는 지나왔으니,
서해 어디쯤이거나 차가운 사막의 귀퉁이쯤이 태생이었을
구름의 먼 행보는 모르는 것으로 한다.
석 달 열흘 동안 먹장구름이 눈물로 떠나지 않았다거나
나와 어느 달콤한 오월의 구름 사이에
보름달 같은 아이가 자란다는,
뜬소문들이 연기처럼 자라나 헐한 저녁을 짓곤 했다.
그러나 이제 시월,
하늘은 생각의 고도(高度)를 조금 높인다. 실상은 늘
비가 되어버린 구름의 후일담 같은 것.
나는 구름을 위해 몇 편의 시를 짓거나
시절의 아름다운 증거를 사진 속에 가두었으나
대부분 먼 배경이었으며 알고 보면
구름 모자들이 한번쯤 쓰윽 나를 써보고 간 것뿐이었다.
뒤를 삶이 들러리처럼 걸었으니,
변덕스럽고 지독했던 체위가 내 이력의 전부였구나.
내가 가졌던, 그러나 위독했던 한 떼의 구름들,
그녀들이 알선해 준 내 몽상의 일터엔
한 줄로 선 토끼나 양떼들이 슬픈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다.
구름이 나를 망쳤다.
너무 많은 하늘이 나를 스쳐지나 갔다.
[감상]
구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하늘의 지형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점점 사라지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름’은 이 시에 있어서 추억과 기억을 조응케 하는 가시 대상이자, 그 모든 것들의 형태이며 이미지입니다. 저녁, 눈물, 사진… 이러한 편린이 있었던 그날에도 구름은 있었고, 어쩌면 그 하늘을 올려다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구름, 그 세계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인생은 귀향을 꿈꾸는 여행이 아닐 것입니다. 구름이 나를 망치고, 너무 많은 하늘이 나를 스쳐간 것은, 이렇게 편력(遍歷)이 나를 길들여 왔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