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 정선 (2006년 『작가세계』로 등단) / 《시작시인선》124
잠 속의 잠
한밤중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몸의 깊숙한 곳이 패였다
내 잠도 한 방울씩 샜다
티브이는 행복한 오후를 저 혼자 노래하고
나는 죄수처럼 질질 끌고 다니던 잠을 게워낸다
게으른 하품 속으로 햇살들이 시옷자로 부서진다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길가 은행나무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고개를 내밀고 대화를 엿듣는 하오 네 시
모두 막혔어
그늘은 비상구야
나무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그늘은 기다랗게 또 다른 수로를 내고 있다
갈라진 수로바닥의 잠 한 마리
그늘 속에 둥지를 틀고 뒤척인다
내 몸을 파먹고
텅 빈 몸 어느 돌 틈에 알을 낳은 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강을 거슬러오른다
[감상]
누구나 그러하듯 어려웠던 시절, 막막하게 하루를 지낼 때가 있었습니다. 정해진 것 없이 무작정 희망을 기다려야 했던 날들, 그때의 불면은 잠 속의 잠이 무기력한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청각적 이미지에서 길어내는 소소한 일상을 내적 성찰로 가닫습니다. 브레이크 밟는 사소한 소음에도 민감하고,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돌아눕게 만들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갈망하고 있는 그 무엇, 그것을 듣기 위해 열려 있는 ‘귀’가 스스로를 자꾸만 깨웁니다. 투명한 나무의 목소리, 웅크리고 있던 생의 대반전인 꿈의 산란! 그렇게 막힌 일상에서 나 자신이 비상구를 향해 거슬러 오르길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