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별이 총총》/ 배영옥 (1999년 『매일신문』으로 등단) / 《실천시선》189
한순간
한순간 제 몸을 수축시켜 색이 짙어지는 것
어느 순간 색이 진해진 것들은
나머지 생을, 전심전력,
순간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어느 지점까지 꽃은
남은 향기를 꽃잎에 모아보고,
마지막 안간힘으로 불타오르는 꽃의 둘레를 그린다
색이 진해지면서 형태를 벗어나려는 순간,
반짝
화색이 도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지탱하기 힘든
바로 그 순간,
막바지 내리막으로 내려서기 전
짧고 짧은
반작용의 한순간,
[감상]
꽃은 단지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활짝 피는 그 한순간을 향해 시간을 집중해왔다는 표현에서 숙연해집니다. 시들어 사라져가는 것이 꽃의 운명이라면, 시들기 직전의 활짝 핀 순간은 그야말로 경이와 고통이 공존하는 점이지대입니다. 이 시는 그 순간을 간결한 쉼표와 더불어 영원의 순간으로 확장시켜 놓습니다. 하물며 꽃의 한순간도 이러할진대, 우리네 삶이나 일생이 어느 먼 시점의 단지 ‘한순간’이라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이 시는, 우리의 ‘영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간힘으로 이 한순간의 일생을 희로애락의 색으로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