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핑치는 손가락에 익숙한 novel.co.kr
내 정신은 그곳을 떠나 있는데
각 손가락 끝이 문양을 더듬으며
조합해 내는 느낌.
한때 내 전부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점심시간 사무실 세면대에서 씻어오는
열무라면이 가득 담긴 코펠.
그 쓸쓸한 허기 같은 거.
기어이 장안평을 떠나오면서
종점으로 떠났던 마을버스와
영영 이별을 한 거였지.
아주 가끔 회기동 전철역 아래
곱창집이 생각나.
취해서 오거나 오자마자 취하던 너를,
그밤 껴안아주었던 가스통은
그 집이 없어진 후 어디로 갔을까
전철이 지나는 때면 부르르
파란색 파라솔 탁자가 흔들리며
젓가락이며 술잔이며
눈동자를 흔들리게 했던 그때.
문학은 벼랑 끝으로 우리를 내몰고 있었지만
델마와 루이스처럼 환호하며
우리는 대체로 만만했던 거지.
어떤 이론도 어떤 직관도 필요 없던 때였어.
다만 서울이라는 이 낯선 곳에서
문학을 볼모로 붙잡힌 청춘이 눈물겨웠을 뿐이야.
젤을 잔뜩 발라 빳빳하고 반짝거리는 너의 헤어스타일처럼
금속의 첨탑이 솟아 있는 그곳에서 너는,
문명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강도와 하중에
문학의 척추를 눌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친구야.
한때 너의 만연체가 말해주듯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맺혀 있는 말이 너무 많아서
소설이, 詩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러니 또 한 번 세상과 내기를 해야하지 않겠어?
노블은 지금 갯벌 같아, 숭숭 뚫린 뻘 구멍으로
살아내자고 살아보자고 제각각
추천, 필독, 초특가, !!!, 모음…,,,,,,
한바탕 조회수가 밀려와 들기를 기다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황량한 갯벌 같은.
거기 어딘가 추억이 집단 유기 되어
찢어진 황포 돛처럼 나부끼는.
그러나 기어이 언젠가는 찾아야 할.
2003. 7. 22. 싸이월드, '글꽃'에서.
<사진-성택형에게...김솔>
지루하고 음란한 장마철,
폐가廢家가 궁금해서,
www.novel.co.kr에 다녀왔습니다.
주인은 없고, 에코도 없고,
어지럽게 현수막만 걸려있었습니다.
그 만장輓章 뒤로
더 이상 그리운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늘 갑작스런 이별이 문제입니다.
그것들은 생의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그 아름다운 시절(Belle Epoch)의 기억들을 통째로 털어가 버립니다.
그러면 균형을 잡을 때까지 멀미를 하게 됩니다.
인간을 퇴화, 혹은 풍화시키는 것은, 무기력감입니다.
우연히 자신의 오래된 기억들과 마주치고도
아무런 격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알리바바처럼 주문을 외우고 들어가서,
폐가의 골방, 글꽃이 처음 피었던 방을 뒤지다가,
이런 글을 찾았습니다.
<제목: 간이역불빛님께 번호: 403 작성자: 김솔 작성일:2000-08-04 조회수:21>
결국,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군요...취하지 않고서 해야 할 이야기들을...간이역불빛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좀 더 치열해지자고 제 자신을 다잡습니다...본의 아니게....불편하셨다면 용서하시길...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다시 뵈올는지...늘, 취해 있어서 문제입니다...술에, 사람에, 문학에, 일상에...건필하시길...김솔...
<제목: 김솔님께 번호: 404 작성자: 윤성택 작성일: 2000-08-04 조회수:26>
뭐..솔직히 말하자면 미안해하지 마세요.
똑같이 그렇게 술 먹고 허물없이 나눈 진지한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문학이라는 거 뭐랄까 딴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진솔한 흐름일 터인데,
무심코 흘려보냈던 안이한 제 말을 김솔님이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를 씁니다.
그래요. 시화를 만든다고 할 때
예전엔 시를 쓰고 사진을 찾다가,
솔직히 지금은 사진을 보고 시를 써요.
그 점이 문학적으로
소홀하고 진정한 문학적인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아요.
다만, 뭐랄까. 길들여진다고 할까요?
김솔님..제가 사진을 보고 시를 쓴다고
문학을 져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좀 지켜봐주세요.
글구 만나면 느끼는 거지만,
술을 먹더라고 정말 솔직하고
문학을 하는 사람이 별종이 아니라
이렇게 정말 똑같이 편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들게 하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보리밭이라는 시화예요.
솔직히 고백합니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제가 사진보고 시를 썼어요.
그냥..
그렇게 썼어요~~^^
오래 전, 무명의 밤에,
간이역불빛이란 남자와
김솔이란 남자가 술집에서 만났을 때,
자신에게도 낯선 이름으로, 낯선 상대에게,
얼치기 김솔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시란 무엇인가, 문학의 고향은 어디인가로,
거창한 술추렴을 했는데,
약간은 격한 감정으로 헤어지고 나서, 다음날 깨자마자,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해서,
왜냐면, 저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문학에 대한 제 생각을 발설했으므로,
택시는 안암동을 거쳐 회기동 가면서,
먼저 등용문에 오른 사람이 거나게 술 한 잔 사기로 한 약속도,
거기서 했었는데, 기억하시는지.
지금의 저는,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의 전모를 기억할 수 없는 걸 후회합니다.
기억할 수 있어야, 후회를 하고 수정을 할 수 있으니까.
그때 아마도 저는,
사진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가
문학의 질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겁니다.
제 깜냥으론,
미분 불가능한 생을 임의대로 잘라내고 이미지를 꺼내는 순간,
생은 완벽하게 재현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이미지의 합보다 생은 더 넓고 풍성하다고.
그런데, 제가 간과하던 게 있었습니다.
그때 성택형의 소극적 변론과 오랜 침묵은,
어쩌면 제게 깨달음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군요.
사진이 이미지를 고정한다는 생각,
그게 틀렸습니다.
필멸하는 인간이 불멸하는 방법은, 시지포스처럼,
끊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자신의 생을 밀어 올리며,
부조리한 생을 확인하는 것이고,
후생가외後生可畏,
인간의 실존적 번뇌들을 해결해 줄 사람들이 나타날 때까지,
문자와 소리와 이미지로 고스란히 기록해 두는 것이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사명일 수 있습니다,
결국, 한 장의 사진은,
니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을 영원 재귀하도록 만들어서
여러 편의 생을 복구해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너무 늦은 것일까요?
기억이라는 것도
몇 장의 이미지로 압축해두지 않으면,
뇌 속에 다 집어넣을 순 없겠지요.
오픈스카이님, 곽상희님을 예전엔 그렇게 불렀죠,
그가 최근에 이곳에 올린, 노블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서,
장마철인데도 싹을 피워내지 않고 씨앗으로 웅크리고 있던 기억들이 일제히,
환호를 지르면서 연한 상추 잎으로 피어나는데,
어디서부터 솎아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 한 장의 사진 속에 매달려 있던 제가,
어느 순간 수십 명으로 불어나더니,
조잘조잘 말을 걸어오고, 술잔을 건네 오고,
전화를 걸게 만들고, 급기야는, 이런 글을 쓰는군요.
그들 중엔 성택형과 술잔을 나누던 얼치기도 있습니다.
여전히 속죄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지금에라도 폐가의 입구에다 윗 글에 대한 답글을 달고 싶은데,
그곳엔 더 이상 제 고해성사를 받아줄 사제가 없군요.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과 찍었던 사진이 행방이 궁금해집니다.
장마가 끝나고 갈바람이 불어오면,
형의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땐, 싸구려 디지털 카메라라도 하나 사서
문자로 재현할 수 있는 세상을 담아볼 생각입니다.
저 보고 시를 쓰라구요?
아이쿠, 전 이제야 4년 전의 기억 속에서
문학의 본질을 감염시키던 바이러스들을 제거해낸 걸요.
그리고 아직도,
사진 속의 풍경과 사물과 사람들에게 말을 걸 줄 모릅니다.
가을은, 바람에 귀를 단련시키기 좋은 계절입니다.
갈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