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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 - 보들레르

2006.09.21 09:59

윤성택 조회 수:844 추천:10


<외국시 읽기>


가을의 노래

보들레르

1
이윽고 우리는 추운 어둠 속에 빠져 들리니
너무나 짧은 여름날의 강렬한 밝음이여, 안녕!
이미 나는 불길한 충격을 주면서 안마당 돌바닥에
장작 던지는 소리를 듣고 놀란다.
겨울의 모든 것 - 분노와 증오, 전율과 공포
또한 강제된 고역은 내 몸 속에 되돌아온다.
북극의 지옥의 날에다 비유할 것인가
내 마음은 얼어붙은 쇳조각이다.
나는 몸서리쳐짐을 느끼며 장작 던지는 소리 듣노니
세워진 단두대의 소리없는 울림조차 이렇지 않다.
내 가슴은 무거운 쇠망치를 얻어맞고
허물어지는 성탑과도 같다.
이 단조로운 충격에 내 몸은 흔들려
어디선가 관에다 서둘러 못질하고 있는 듯하다.
누굴 위해? - 어제는 여름이었으나 이제는 가을?
흡사 죽은 자를 매장하는 종소리와도 같다.

2
나는 그대 지긋한 눈의 푸른 빛이 좋아,
다사로운 미녀여, 나 오늘은 모두가 쓰디써,
그대 사랑도, 침실의 즐거움도, 화끈한 난로도,
그 어느 것도 바다의 눈부신 태양만 못해.
하지만 사랑해주오, 다정한 그대여!
박정하고 심술궂은 놈일지라도 어머니가 되어 주오.
애인이건, 누님이건, 가을 영롱한 하늘 또는
낙조의 한 순간 그 따스한 정을 베풀어주오.
잠깐의 수고를! 무덤 기다리니, 그 탐욕한 무덤이
아! 내 이마 그대 포근한 무릎에 얹고,
백열의 지난 여름 그리며, 이 늦가을의
따스하고 누른 햇살 맛보게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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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1.
가을은 사랑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또 그 반대로 사랑을 잃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는 눈이 멀었던 사랑일수록 소리에 민감하다. 마치 환영으로 살아가는 맹인처럼 고독하다. 그리하여 ‘안마당 돌바닥에 장작 던지는 소리’에도 겨울과 죽음, 심지어 자신의 관에 박는 못질로 반응한다. 시각의 세계에서 거부당한 맹인이 청각의 세계에서 삶을 완성하듯, 그 고조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나아간다. 실연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을 두렵게 한다.

2.
19세기 『악의 꽃』이라는 단 한 권의 책으로 ‘근대시 창시자’로 알려진 보들레르. 그의 일생은 격정적 사랑의 징후로 가득하다. 검은 피부의 여인과 각박한 세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다가도 수호천사나 누이 같은 다정한 여인과의 여행을 상상한다. 하다못해 스쳐 지나는 여인의 눈길에서 사랑에 전율하기도 한다. 그러다 지치면 어머니가 되어달라고 여인의 무릎에 기대어 보채기도 한다. 끝없이 갈망하고 또 끝없이 절망한다. ‘오 진흙탕 같은 위대함이여! 숭고한 비열함이여!’ 그의 노래는 이렇게 악다구니에서 꽃을 피운다.

3.
보들레르의 삶에서 가장 돋보이는 여인은 흑인 무명배우 쟌느 뒤발이다. 물론 이 시는 1859년 그의 나이 38세 때 쟌느 뒤발이 방탕한 생활로 쓰러져 요양소로 간 후 초록 눈의 여배우 ‘마리 도브륀’을 연모하며 쓴 것이지만, 쟌느 뒤발을 묘사한 검고 매력적인 표현들을 접하다보면 새삼 정염이 발산하는 문학적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청춘은 가장 밝은 인생의 정점이다. 그녀의 기록은 1870년 보들레르가 46세로 죽은 지 3년 뒤 그의 친구의 목격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쟌느 뒤발을 거리에서 보다. 그녀는 목발을 짚고 기어다닌다.’

* 《현대시》 2006년 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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