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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 전봇대

2001.04.19 16:52

윤성택 조회 수:112


건널목의 전봇대 옆에서
푸른 신호가 건너올 때까지
문득 떠올리게 되는 너.
하숙집, 과외, 이삿짐센터 전화번호가
새로 붙어오다가도
잠시 후 수건을 두른 주름진 손들이 와서
다시 깨끗하게 긁어내는
흔적을 보면서
너 또한 어떤 삶들을 하루에
붙이고 떼어내고 있는 것인지.

전봇대는 그렇게 서 있으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겠지.
신호가 바뀌어 한때의 차가 지나칠 때마다
기억의 전류를 흘려보내며
시멘트 밑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무처럼 땅 깊은 곳으로
가는 떨림을 뻗어 내리는 것이겠지.

한때 나는
전봇대를 보지 못하고
건너왔다가 건너가는
이별의 것들만 가슴에 세웠다.

사랑도 이처럼
떠나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일까.
건널목 전봇대가
푸른 신호가 들 때까지
내 어깨를 받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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