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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배설에 대하여`

2001.05.10 14:43

장또 조회 수:123

이것 저것 뒤적이다가, 뒤척이다가 어제 수신인이 제 이름으로 되어 날아온 모 격월간지를 뒤적여 봅니다.  내 이름과 여기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로 날라온 이 잡지, 의아해 하면서 펼쳐 들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내용이 소담스러운게 재미 있습니다. 오전 내내 이것만 들여다 보구 있었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소식이며 카페문화의 역사며 알콩달콩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네요. 시도 있고. 수필도 있고...

이 글도 이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이사 초기에 꽤 넓어 보였던 주거공간이 다시금 좁아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다 버릴 용기도 없었다. 물건마다 기능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고 추억이 있는 탓이다. 포화 상태에 이른 물건과 옷가지들. 그래도 외출할 때마다 마땅히 입을 만한 것이 없어 고민한다. 아이는 여전히 새 장난감, 새책을 보면 탐을 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고 만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투입과 배출의 불균형. 생명체가 아니니까 그래도 견디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배출기능이 저지 당하면 병이 들고 만다. 또 배출이 제 출구를 찾지 못해도 문제다. 뒤로 나와야 할 것이 입으로 나와도 곤란하니까.
드디어 퇴출 순위를 정했다. 근 10년을 사용했던 전자레인지, 고치는 값이 새로 장만하는 값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0순위로 선정되었다. 묵은 것일수록 무게는 더 나간다. 끙끙거리며 문밖으로 인위적 배출을 감행하는 순간에도 잡다한 생각으로 머릿 속은 분주했다.
"엄마. 똥!"
어른들이 쉬쉬하는 말을 아이들은 서슴엇이 잘도 내뱉는다. 아이들의 그런속성이 부럽다.
"아직도 혼자 못 닦니? 학교가서는 어떻게 하려고!"
"나도 알아.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묻었어"
아이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열려진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실려 아이의 살아있는 똥 냄새가 새롭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냄새를 '죽어있는것'과 '살아있는 것'으로 나누기 시작한 나의 버릇.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계시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 아니 그 분비물에 대한 기억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똥'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똥이란 말을 기피할까? 냄새가 고약해서?
'똥', '똥'이 얼마나 명료하고 예쁜소리인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내 누워 어멍난 배설을 계속하시던 외할머니. 그 시커멓고 끈적이는 존재의 배설물, 아니 영혼의 배설물, 평생을 속으로만 삭히던 애증들이 그제야 배출되다니.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냄새를 풍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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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버리는 기쁨은 배설의 쾌감과 너무 닮았다. 그 후련함이라니.
잠시 피로를 풀 겸 신문을 펼쳐 들었다. 잠이 소르르 몰려온다. 그새 아이는 내 눈을 피해 이미 정리를 마친 장난감 상자 뒤에 구멍을 뚫었다. 그 구멍에 손을 넣어 장난감을 하나둘 꺼내 제 방으로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아이가 내내 조용했던 이유를 알아챘다. 그러나 아이에게 배설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고문이라는 생각에 모르는 척했다. 자연스런 생리현상은 강요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이것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외칠 성격의 것이 못된다. 살아있는 모든이의 존재 속에 자리잡은 외침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쾌변을 고대하며 아련히 잠속으로 빠져든다. 수술 후의 가스배출을 고대하는 이처럼.

글 임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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