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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밤 샜습니다.

2001.05.11 19:53

조회 수:156 추천:3

죽마고우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초상집에서 날 밤 샜습니다. 거금 6만 원 돈 밤 새느라 날렸습니다. 시 습작을 하던 손가락이 죄인입니다.
상주인 친구 녀석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내가 죄인입니다. 하늘을 보지 못할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며 서럽게 울더군요.
친구 녀석의 어머니는 참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요새는 포크레인이 장례를 잘 치러 줍니다.
그래서 시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친구 아버님!
붉은 고구마 알통을 자랑하셨던 그 분, 나를 좋아하셨던 고인!
--------
포크레인처럼

오늘 오후 내내
그대의 걸음을 빼닮은 아들이
길을 정비하고 나무를 심고있는 포크레인을
넋 나간 듯 따라다녔습니다.
오늘 밤
아들은 꿈 속에서도 포크레인 운전사가 되어
내 품을 팠습니다.
나도 또한 당신 때문에
벌떡 벌떡
길가 질경이 파 헤쳐지는 숨 몰아치며
거친 땅을 혓바닥으로 물어뜯으며
몇 트럭 응혈을 퍼 내는 어깨로
뒤척였습니다.
지난 겨울
철판같은 얼음이 박힌 땅 속에
당신 장례를 치렀는데
나는 왜
그대의 무덤 가는 길에 붉게 패여있는
포크레인의 깊은 발자국이
이승과 저승의
철길 건널목처럼
지붕에 걸친 사다리처럼
보이는 것이었을까요.
제단을 준비할 음식을 보자기에 싸서
내일 아침 그대에게
건너가야 할 길,
오늘 밤
생전에 당신이 누워 자던 자리에서
아들은 씩씩거리는 포크레인이 되어
내 가슴을 자꾸 파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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