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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은

2001.05.18 10:36

윤성택 조회 수:148






그러고 싶었다.
허리우드극장 부근 간판도 없는 1500원짜리 해장국집에서
뜨거운 너무나 뜨거운 해장국을
오직 홀로 먹는 사람들 틈에 섞여 먹었다.
가슴 어딘가에 그늘 하나쯤은 만들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 법할 사람들,
김이 무럭무럭 나는 해장국을 통해 어쩌면 그들은
그 따뜻함을 수혈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으로 우려냈는지 두부와 시래기뿐인 가슴 짠한 국물,
땀 뻘뻘 흘리며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마음 얼큰한 해장국이 될 순 없을까.
허리우드극장에서 밀린 숙제 같은 영화,
"인디안 썸머" 8시 반 프로를 끊어놓고
세수를 했다. 거울 속에 물기 뚝뚝 묻어나는 사내,
서울에서 재배되고 있는 퇴행중인 청춘이 이쯤 될까?
입고 있는 티를 수건 삼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조금 남은 시간을 영화압력 단체가 되어버린 시네21로
떼우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 인생 상영중인 거 알고 있는데 누가 와서 보고 있을런지
어둑한 하늘가 잔별들 마실 나왔을지도 모르는 밤.
10명 남짓한 텅빈 상영관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좌석에 가서 신발을 벗고
다리는 앞좌석 팔걸이에 얹혀 놓고
그렇게 반 누운 자세로 영화를 보았다.
틈이 있는 영화.
그랬다. 마지막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때,
두 남녀의 눈빛이 마주쳤다. 어쩌면
일생에 마지막이었을 그 눈빛.
얼마나 많은 영혼의 말이 오갔을까.
끝내 어항물 갈 듯 눈물을 갈아주지 못했지만
영화속 남의 인생을 곁눈질한다는 것이
이런 밤에는 해볼만도 하다고,
지하철 창에 인화되는
내가 들어 있는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싶었다.
가끔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은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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