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잘못과 김지하의 실수'
얼마전 한겨레신문에 최재봉 기자가 쓴 '미당의 잘못과 김지하의 실수'라는 글이 실렸다. 그 글에는 김지하는 단지 '실수'했고 서정주는 '잘못'했으니 둘은 차원이 다르다는 투의 글이었다. 서정주와 김지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고 유치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난 서정주가 더 낫다고 본다.
▶▶[글마을통신]미당의 잘못과 김지하의 실수
서정주는 김지하에 비해 변명도 적었고 어줍잖은 사과도 덜했다. 친일과 독재 찬양은 그의 정치관이었다. 하지만 김지하는 시도 때도 없이 변신하는 변신괴물이다. 그 나이 먹도록 줏대 하나 없이 살아온 노추에 불과하다. 당시 91년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김지하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저주 속에 죽어갔고, 강기훈 씨는 유서 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들의 계속되는 떠벌림으로 노태우 정권은 일말의 죄의식과 부담없이 민주세력을 신나게 짓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실수'라고? 김지하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친김지하 세력들이 지하가 안티조선일보 1인 시위를 마칠 즈음 같이 민주주의여 만세(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용서라는 말을 쉽게 내뱉겠지만 당대를 살았던 기층 민중들은 그렇지 않다.
과연 최재봉 기자의 말대로 김지하는 '실수'를 한 것일까? 김지하는 여러 매체를 통해 그런대로 어줍잖은 사과도 했고 말 그대로 실수라고 변명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를 냉정하게 지켜보았거나 지금도 그 때를 냉정하게 회상한다면 김지하의 말과 최재봉의 기사는 가히 경멸할 만한 것이다.
우선 한겨레 기자 최재봉의 기사는 서정주와 김지하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있다. 그것도 서툴게. 문학도였고 열렬한 문학 매니아임을 자처하는 자의 글 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눈에 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할애된 지면이 적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 아닌 핑계가 있을 수 있겠다.
친일과 독재 정권에 매문한 서정주와 91년 당시 문제가 된 김지하를 비교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서정주의 알려진 생의 가장 큰 대목은 시와 함께 그 친일의 흔적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친일이라 함은 민주 인사부터 극우적 성향을 가지고 독재정권에 붙어먹은 자들까지도 저주하고 비난하는 가장 치명적인 경력이고 어찌해도 씻을 수 없는 가장 큰 오명이다.
서정주는 김지하와는 달리 일제 시대와 독재 정권 시대를 다 겪은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서정주는 당연히 김지하보다 몇갑절이나 욕을 먹었고 그 비판의 두께도 그가 쓴 책의 두께를 넘어설 것이다. 그러나 김지하는 어떤가. 그는 박정희와 맞서 싸운 몇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하나이다. 김지하는 정말 대단했다.
수 많은 학생들과 노동자가 감옥에 가고 죽어 나가도 별 반응은 커녕 매도하던 매스컴이 대단한 대시인의 몇 마디 말에 크게 주목했고, 김지하는 그 상황에 의해 신화적 존재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정말 당시 그의 투쟁은 영웅적이었다. 다만 조직된 대중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결국 김지하는 관념적 엘리트였다. 수많은 고초를 겪고 그는 다시 등장했다. 포장된 영웅의 이미지와 생명사상을 가지고.
그리고 91년 5월 5일이었다. 그러나 대단한 영웅 김지하는 민자당 노태우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라며 과도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웅변조의 글을 기고하자 마자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한 학생들의 분신 자살은 철부지 어린애 투정만도 못한 바보짓이 되었고, 군경의 곤봉과 방패 최루탄은 백배 힘을 얻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일갈했던 김지하 자신이 죽음의 굿판에 주연급 무당이 된 것이었다.
그건 그의 영웅적 이미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니 더욱 그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최재봉 기자 말대로 그의 실수려니 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후 일어났던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여파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최재봉 말대로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각계에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고 김지하는 여러 신문을 메뚜기처럼 옮겨다니며 당시 민주화 세력을 짓밟는 극우 논객을 자처했다.
그 당시 김지하의 글의 행적을 유심히 본 사람들은 입이 열이라도 결코 그가 실수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토록 신념에 차서 여러 유력지에서 고액의 원고료를 받아가며 필봉을 휘드르고 다녔는데 실수라니. 최재봉 기자 사전에서 실수라는 단어를 찾아보고 그런 말 하기 바란다. 열렬한 문학 애호가로서 김지하 시의 매력에 빠져 그의 매문 행위를 보지 못했는가. 아니면 보지 않으려 했는가. '실수'라고? 그 무엇도 실수일 수 없다.
독자들이 죄다 바보들은 아니다. 친일의 흔적으로 누구라도 망종으로 여기는 죽은 서정주와 그래도 한때 민주화운동의 강력한 이미지가 남아 있는 김지하를 비교해서 김지하를 비판의 대상에서 슬쩍 자유롭게 해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서정주는 서정주 대로 김지하는 김지하 대로 자신의 역사에 대한 몫이 있다. 그건 당신의 그 유치한 비교보다 엄중한 거다. 거기엔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 되어 있다. 당신이 뻑하면 들먹이는 민중들 말이다. 민중의 민도 모르면서 말이다. 조작된 영웅 개인 하나를 놓고 당대를 견주지 말라. 아직 우리에게는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
**이 글은 서울예대 문예창착과 출신의 이명재씨의 글을 정리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