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믿을 수 없어. 내가 믿는 건 기록뿐이야."
15분 단기 기억 상실증,
레너드는 많은 시행착오를
몸에 새겨 문신으로 남깁니다.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메멘토"라는 영화를 두 번 보았습니다.
그것도 두 번째에는 어찌나 긴장하면서 봤던지요.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컬러 화면들을 대문자,
긴 통화로 이루어지는 흑백장면을 소문자로 표기하면,
영화의 구성은 E-a-D-b-C-c-B-d-e-A로 되었다더군요.
그러니까 시간 순서대로 늘여 놓으면
a-b-c-d-e-A-B-C-D-E가 되는 것이지요.
무슨 수학공식을 푸는 것처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아야하는데
스트레스를 푸는 영화가 아니라
화면으로된 퍼즐하나 맞추고 나온 기분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 영화의 메타포가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루살이에게는 하루가 인생이듯,
그에게는 15분의 기억이 인생처럼 존재합니다.
늦은 밤 돌아오는 어둑한 전철 창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윤회의 개념이 존재한다면 나는 지금,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는구나.
남자 평균 71.7년의 기억 상실증,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노화되어 가는 세포에 새기는 것은 아닐까.
다시 깨어나면 의문투성이의 삶이 될 것이고
막연한 이전의 삶에 대한 느낌만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전생의 당신을 나는 기억할 수 없고
단지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내 정신 바깥의 한 세계를 믿어야 한다.
나는 나의 행동이 의미를 갖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설령 내가 그것들을 기억 못한다 할지라도."
눈감아도 세상이 존재하듯
기억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내의 복수를 위해 문신을 새기는 레너드,
단지 15분의 기억을 가지고 그는 수없이 되풀이되는
의문을 풀어갑니다. 어쩌면 그는 과거 마지막 기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며 끝없이 살인을 해왔을지도 모르는 채.
기억해봅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기억하는 오래된 것들,
기록된 것이 없으므로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해석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어쩌면 내 삶의 모든 질서를 유전자에 실려
자녀에게 아니 그 대대손손의 끝없는 터널을 통과하며
먼 훗날 나를 완성하는 것은 아닌지.
영화가 반쯤 지나면 여기저기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패턴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기 기억손실증 환자가 겪는 해프닝에 대해
웃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침 뱉은 더러운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한참을 뛰다가 "내가 왜 뛰고 있지?
저기 건너편 친구를 내가 쫓고 있나? (총알이 날아오고)
아니 이런, 내가 쫓기고 있군!"
그의 삶이 우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5분이 아닌 70년을 넘게 살면서
그런 해프닝을 계속하고 있다면
누가 저 먼발치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을까요?
첫 번째 관람 때 이 영화의 깊이를 아는 것인지,
스님의 반들거리는 뒤통수가 앞쪽에 보이더군요.
기억은 윤회와 관련된 것이므로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인간 수명 너머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눈빛을 보며 생각해봅니다.
당신은 날 언제 본 적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아는 눈빛을 하는가?
혹시 전생 어디쯤 아는 사이이지 않을까 해서
친절한 눈빛을 하는가?
그래서 당신,
내가 첫눈에 반했는가?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