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문득
작년 봄 결혼한 후배를 생각한다
그들은 늘 둘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시험기간 도서관 자리에서도
봄날 잔디밭위에서도
그들은 늘 둘이었다.
남자가 군대에 가고
여자가 흐드러진 철쭉처럼 흐득 흐득 눈물을 뿌리고 다닐 무렵에야
비로소
우린 그들이 혼자서도
밥을 먹을 수 있고
시험기간 도서관에 파묻힐 수 있고
봄날 잔디밭위에서 햇볕을 올려다 볼 줄 안다는 걸
알았다
그러던 주말이면 여자는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자석의 반대 방향처럼 그를 탐해
경기도 어디쯤을 찾아 다녔고
돌아온 월요일 공강시간엔 내 손을 잡고
언니, 벌써 그가 그리워...
투욱 투욱 가을 비에 지는 낙엽처럼 울어버렸다.
그러던 여자가
거짓말같이 시집을 가버리고
남자는 자살을 결심한 고목처럼
까맣게 자신을 태워 버렸다
그가 굳게 오감을 닫은 여러 날 후
늦은 저녁 소주잔을 비우다 검은 입이 열렸다.
-그 애를 잊을 수 없어
그 애랑 닮은 여자만 보면 미친놈처럼 따라가게 돼
어느날은 갑작스런 유-턴은 하다가 죽을 뻔도 했어, 선배
나 차라리 죽어나 버릴 걸...
문득
길을 가다가
작년 봄 결혼한 후배를 생각한다
그도 그녀처럼 거짓말하듯 결혼을 하고
올 여름 거짓말같은 딸을 낳았다 전해 왔다.
지난 사랑과 닮은 여자를 좇아 유-턴을 하다 죽을 뻔 했다던.
차라리 죽어나 버리지 하던 그가
길바닥에 선명하게 그려진 두줄 노란선위에 갑작스레 떠올라
불현듯 가슴 한 켠이 뜨뜻해온다
가을은
그들의 머리속에 서로를 불러낼 수 있을까.
written by apre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