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변기 위에서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 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망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 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 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 한다면」, 김선우 시집, 창작과 비평사
참고로 이 시인은 여자입니다. 겁나게 이쁘게 생긴 시인이죠. 이 밖에도 열나 재미 있는 시를 잘 쓰는 내가 무지하게 부러워하는 시인이죠. 뭔가 시는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소재로 하지 않고 그 더러운 것들을 맑고 투명한 언어로 노래하는 게 이 시인의 장점입니다.
2001.11.8
오늘은 행복하다
왜냐면 내일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할 것이므로
한 석삼년 정신없이 일만하고 살았으므로
또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나는 나를 아끼므로 이기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만큼 나를 방목해두고 싶다
당당하게
그것은 실패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므로
그냥 3달간은 먹고 놀고 할 것이다
돈이 많냐구? 사실 별루 없다
하지만 당당하고 건강하게 시를 쓰고 싶다
그저 시가 좋아서 시만 쓰면서 살 것이다
제발 이 대목에서 오해 없길
무슨 신춘이니 그런 것 말이다
그냥 내가 온전하게 쓰고 시들을 쓸 것이므로 ㅎㅎ
누군 행복이 돈이거나 명예이거나 그런 것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최소한 내가 하고 싶을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괴기스럽고
불쌍하거나 바보 같다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잖아? 돈두 없구 애인두 없구 ㅎㅎ
허나 나는 나 자신을 단정짓고 싶지 않다
아직 32밖에 되지 않았으며
나는 내 가슴속에 아직도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괜히 울고 싶을 때까지
그때까지 나는 나 자신을 방목하고 싶다
그것이 고요한 나의 울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내면의 아름다운 외로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존재감
인간이라는 그 나약한 존재감
그 무력함과 두려움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하여 쓸쓸히 울고 싶어질 때까지
술 먹지 않고 내 자신의 나르시스에 빠져
내가 내 내면의 고요한 눈물을 가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만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