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그건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2.01.04 10:25

김솔 조회 수:176

<그건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져 무릎 위로 푸른 멍이 번지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쯤은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넝쿨식물들은 자신의 몸에 넝쿨을 감는 바람에 괴사하고 있는 자신의 팔다리를 꼼짝 하지 못하고 쳐다보아야 한다. 썩은 팔다리는 나무의 수간을 통해 끌어올려져 다시 자신에게 섞일 때까진 기다리는 수밖에. 도마뱀은 걷다가 자신의 꼬리를 밟아 그것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돌 틈에 숨어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꼬리가 수탉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다. 약간 곤혹스러운 것은 자신의 꼬리로 몸을 살찌운 수탉을 다음에 또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한 달에 고작 한 편의 시나 일년에 고작 한 편의 소설을 쓰는 일에도 늘 마감 시간이 거의 다 찰 때까지 도굴범처럼 야밤에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데 평범한 사람의 것인 줄 알고 파 들어간 곳에서 죽은 가족들의 해골을 몽땅 파내고 만다. 그렇게 해서 받은 몇 만원으로 술을 받아 마시면서 개연성을 운운하는 평론가들과 표절을 의심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하느라고 마음대로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