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 05분 서울발 목포행 기차.
21시 59분에 평택역에 도착하게 되어있는
무궁화호였다.
디지탈카메라에
기차 안과 밖의 풍경을 몇 컷 구겨넣으며
옆좌석의 스무살쯤 된 사내아이가 마시다 만
음료수 병에서 시고도 단 매실 내음을 맡았다.
사내아이는 기차가 출발하자 눈을 감고 새근거렸고
수원역을 도착할 무렵,
분홍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던
신현림시인의 영상 에세이집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앞으로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읽어내는 거라는
서문의 글귀에 덜미를 잡혀서 산 책이었고
내 가슴과 감정을 도난당한 것 같은 즐거움을
내내 같은 부피로 느끼며 읽은 책이었다.
마음처럼 기차 안은 적당히 서늘했고
몸을 흔들며 지나가는 차창 밖의 불빛들은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차창 위로 투명하게 덧칠해진 백치같은 나의 얼굴.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거짓말처럼
내 영혼의 부재가 느껴졌다.
어쩌면 유하의 시구절처럼
상처받은 내가 지닌 영혼은 언제나
몸 밖을 떠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정확하게 21시 59분에
평택역 플랫홈으로 들어서며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낡은 기차의 뒤꽁무니를 향해 흰손수건을 흔들듯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으로
나는 기차와 일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