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서늘한 가을물

2003.09.19 10:44

조회 수:273 추천:3




하늘이라는 무한(無限) 화면에는
구름의 드라마,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수줍은지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이번 여름의 주인공은
태풍 루사가 아니었을까.
루사는 비석과 무덤들을 무너뜨렸고
오랫만에 뼈들은 진흙더미에서 나와
붉은 강물에 뛰어들었네.
불멸을 향한 절규들,
울음 울던 말매미들이 사라지고
단풍이 높은 산봉오리에서 내려오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산 좋아하는 이들을 마지못해 따라나서도
개울가에서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고 싶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네.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쉬임없이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



...텔레비젼, 최승호


...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산 좋아하는 이들을 마지못해 따라나서도
개울가에서 그냥 혼자 어슬렁거리고 싶네.

...^^;...정말 이런적이 있었더랬는데...생일을 굳이 북한산 꼭대기에서 하자고 우기는 친구들 때문에 맘에 내키지도 않는 산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다리는 아파죽겠고, 생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꾹 참고 산꼭대기에서 다 뭉개진 케이크를 먹었습니다...덕분에 아무 준비도 없이 산에 올랐던 나는 다음날 다리가 퉁퉁 불어있어야 했지요...
...일전에 그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 녀석이 지방으로 내려갔더군요, 한 녀석은 직장을 옮기고 다른 녀석은 직종을 바꾸고...등등...늘 무심했지만서도 또 한번 무심함에 미안해지더라고요... ...벌써 몇년 전인가 한 녀석은 서늘한 가을물에 흘러내렸지요, 늦여름에 영정 사진을 걸어야 했으니까요... 딱 한번 친구가 죽은 후 북한산에 혼자 간적이 있었는데,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다가 왔었네요...
...
이래저래 내 할일 내 욕심만 챙기다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들렀습니다...날선 비에 떠내려 가지는 않으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