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입었던 묵은 잠바를 꺼냈는데
안주머니에서 신용카드 이용내역이 적혀 있는
매출전표 한 장이 나왔습니다.
거래일시, 시각까지 정확하게 기입되어 있는
그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장 나를 잘 기억하는
나라고 믿어왔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 시각에 나를 가 있게 만든
과거가 새삼스러웠습니다.
그 저녁에 나는 어떤 이와
어떤 생각을 나누며
와인 생삼겹살을 먹었을까.
어쩌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내 과거를 기입하며 뒤쫓아왔던
카드 이용내역들이 서서히 내 일생을
데이터화시키고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삶을
마그네틱 안에 가둬,
죽음과 죽음 사이
통계로 거래되지는 않을지.
카드를 긁으며 살다가
정작 가려운 희망은 긁지 못하고
연과 연 사이만 불안하게
오가는 것은 아닌지.
잠바는 그냥 잠바일 뿐인데
두 계절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면
왜 그리 날 닮아 촌스러워지는지요.
어렸을 적이 생각 나는군요.
계절 지난 아버지의 양복 주머니를 뒤지면
동전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옷장 속에서 장난치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들어버린,
그리고 깨어나 울었을까.
그 막막한 어둠이 언젠가 내가
들어갈지도 모를 관속인 듯 싶어서.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
내가 들어갔던 관인가 싶어서.
우리는 자궁이라는 주머니에서 나와
무덤이라는 주머니로 되돌아간다는 사실.
그러니 평생 주머니를 뒤지다가 죽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카드는 나를 어디든 데려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내가
오늘 잠바에서 발견되었다.
양복 바지 혹은 면바지, 청바지 주머니 속엔
뭐가 들어있어요?... 궁금해서요.^^